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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지나가면 센서가 반응해서 광고판 플래쉬가 번쩍번쩍 터진다. 소리도 리얼하게 찰칵찰칵 난다. 아래다가 레드카펫을 깔아놔서. 뭔가.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아이디어가좋다. 아직 신도림에만 설치되어있다고 한다. 서울의 중심인가 역시 신도림? 신주쿠=신도림 신신라인. 교토의 요지.
nsfsr@khcu.ac.kr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장. 정치인과 이미지와 관련된 방송. 이미지정치논란 http://news.kbs.co.kr/news.php?kind=c&id=865544
민성훈님 안녕하십니까? 서울특별시장 오세훈입니다.
우리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WDC서울2010사업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와관련 Icsid(세계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 임원진 인터뷰 등을 통해 WDC서울2010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중인 민성훈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민성훈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제가 서울시장으로 취임한뒤 서울시는 디자인을 통해 서울의 매력을 높여가는 노력을 착실히 진행하였으며, 그 결실로 국제산업 디자인단체협의회(Icsid)로부터 사회·경제·문화의 발전을 위해 디자인을 적극 활용하는 도시에게 부여하는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되었습니다. 세계디자인수도 선정을 계기로 서울시는 단지 외형을 예쁘고 아름답게 꾸미는 디자인을 뛰어 넘어 도시를 변화시키고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디자인, 이를 통해 도시의 부(富)를 창출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민성훈님께서 리서치 추진과정에서 확인하였듯이 디자인 사업 추진과정에서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성훈님의 리서치가 완료되어 개선방안 등을 보내주시면 사업추진 과정에 반영을 검토하여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와 관련해서는 세계디자인수도서울2010을 총괄담당하고 있는 WDC담당관에게 지시하여, 민성훈님께 WDC서울2010 사업 추진현황 등을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였음을 알려드리며, 이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서울시의 디자인 사업과 관련해서 아낌없는 조언을 부탁드리며, 가정에 항상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 08. 27
![]() 일본여행 일본여행. 아무런 계획없이갔다. 작년 참가했던 나고야 워크샵의 인연으로 만난 줄리아씨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 거기에 일본도쿄에 오게되면 꼭 연락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무작정 떠난걸지도 모르겠다. 그냥 줄리아씨를 만나기위해 줄리아씨는 결국 못만났지만. 그래도 좋은 여행이었다. 돈을 많이 쓰지않기 위해서 적게 가져갔는데, 그만큼 고생했지만, 고생해서 더욱 좋았다. 보연이는 내가 물을 하도 많이 먹는다고 비효율적이라고 했는데. 난 그것도 많이 참은거다. 먹고싶어도 참았고, 마시고싶어도 참았고, 사고싶어도 참았다. 우리누나가 샌프란시스코에서 6개월 있을때, 돈을 아끼느라고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누나의 그런심정이 이해가 되면서, 한국오면 돈을 계획적으로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첫날은 신주쿠를 방문했다. 말로만 듣던 신주쿠 신주쿠는 지하철 역이 4개가 밀집한 거대한 교통중심지. 사람이 엄청 많고 광고,간판이 다양하게 붙어있는 건물들이 그냥 서울의 도심을 보는듯 했다. 이런 곳은 뭘 알아야 특색있는 곳을 찾아갈 수 있으련만.. 너무 뭔가 많아서. 그냥 유명한 "신주쿠" 에 왔다는 사실 하나로 만족하기로 한다. ![]() 신주쿠 역에서 한정거장 거리에 아주 큰 공원이 있었다. 입장료를 받아서 그런지, 일본 현지인들은 그렇게 자주 이용하는 것 같지 않아보였다. 공원은 서울대 만큼 큰데 사람들은 한 50여명 되려나? ![]() 공원에서 한숨자고, 신주쿠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는 "하라주쿠"에 갔다. 하라주쿠. 이야기는 한번 들어봤음직한 곳. 우리나라의 명동? 홍대? 같은 곳. 이곳저곳 사진을 찍으면서. 정말 관광왔구나 하는 사실을 실감했다. ![]() ![]() ![]() 3시간의 작업마감시간이주어진상황에서 끝낸 아에이오우어?! pt.2 디지털싱글자켓의 이미지
1997-서울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1999-서울대학교미술대학졸업 2000-그룹 '패닉' 베스트 앨범 자켓디자인 2001-풀브라이트 장학금, 아시아 컨츄럴 카운셀 장학금 2002-미국 비쥬얼 커뮤니케이션 필름 페스티발 골든릴 후보 2002-제36회 뉴욕필름 엑스포 심사위원상 수상 2002-제2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미디어시티 참가 2003-시카고 아시안 아메리칸 쇼케이스 초청 2003-시카고 비디오 데이터뱅크 2003 작가 선정 2004- 칼아츠 석사졸업 2004- 제33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선정 2004- 아테네 필름페스티벌 실험 영화상 수상 2005-부산 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부분 국민대학교 2010년부터 영상학부 신설. 뉴스꼭지
‘빛의 작가’로 불렸던 하동철(1942∼2006) 전 서울대 교수의 2주기 추모전이 20일까지 서울대 미술관에서 열린다. 평생 빛을 주제로 한 근원적 작업에 몰두해 온 고인이 한국 현대추상미술에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는 전시다. 후학 양성에도 열정을 다했던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하원(울산대 서양화과 교수) 하진(프랑스 파리1대 조형예술학 박사) 하준수(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등 3남매는 최근 1억 원의 장학금을 서울대에 전달했다. http://blog.naver.com/eazy98/120057407009------------디자인올림픽 하준수교수님외 학생들 참가. 한미교육위원단. 도장형으로 만들어서 아무종이위에 찍을 수 있다. 최보연양이 디자인함. 기존의 버려지는 종이들을 재활용하기 위한 아이디어. ![]() ![]() ![]()
“…태어나기 전에 당신은 0이었습니다. 이제는 1이지요. 이후에 죽게 되면 다시 0이 돼요. 그렇기 때문에 0이 1이기도 하고, 1은 0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1 더하기 2는 0입니다. 선 학교에서는 이걸 가르칩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자, 묻겠습니다. 1 더하기 2는 3이에요. 1 더하기 2는 0이에요. 어떤 게 옳습니까? 둘 다 옳아요. 알겠습니까?
그러나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다음 교과과정에서는 어떤 게 옳으냐라는 질문에 대해 둘 다 옳다 하더라도 30방을 맞을 것이요, 둘 다 그르다 하더라도 30방을 맞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1. Seoul Document 작업 둘다 테이프를 캡쳐받은 만큼. 역시 개입될 여지가 크지않다. 그냥 어떻게 편집하느냐의 문제인데 큰 엘니뇨 한번 닥치면. 범람하지않을까? 그때쯤이면 청계천 부실시공이다뭐다 사람이 부른 인재다. 이런이야기가 나오지않을까? ![]() 쥐색도시 intro
(비둘기가 날아가고 도시의 전경을 보여주는 영상 삽입_ 북악스카이웨이에서 촬영가능하다고 봄.)
새로운 랩가사가 될 아이디어의 원천
-------------------------------- 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를 느끼며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윈드를 맞았다. 그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그는 인생의 라이프를 끝내기 위해 디엔드. 모든것을 옭아매는 폭풍같은 스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자신 스스로 죽음의데스로 몰아갔다. 후에 전설의 레전드로써 기억에 메모리 -기적의 미라클 길이길이 가슴속 하트에 기억될 리멤버. -끝에 Fin-
2009
group theory of soulcompany paper, 120mmx120mm designed by sunghoon, sejoon ![]() ![]() ![]() ![]() ![]() ![]() ![]() ![]() ![]() ![]() ![]() ![]() ![]() ![]() ![]()
광장의 열기를 일상에서 견고하게 만들어야
"혹시 인원이 적으면 어떡하지, 경찰은 차벽을 쌓았을까, 빨리 도착해야 할 텐데…." 지난 6월 10일 저녁, 2호선을 타고서 서울시청으로 향한 길에 오만가지 걱정을 했던 필자의 다급함은 서울시청에 도착해서 많은시민들의 참여를 보고서는 이내 사라졌다. 여전히 시민들은 작년의 촛불을, 1987년의 눈물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달라진 점도 있었다. 지난해 촛불집회의 동기가 '미친 소'라는 의제가 압도적이었다면, 올해 6·10 집회에서는 현 정권을 겨냥한 총체적인 비판과 더불어 쌍용자동차, 한국예술종합학교, 용산 참사, 대운하, 광장 조례 등의 다양한 의제들이 광장과 거리에서 공존하였다. 흥겨운 집회의 공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밤 11시가 지나 야당 의원들이 빠져나가면서 경찰들이 서울광장과 도로에 있었던 시민을 삽시간에 도로 밖으로 내몰았다. 추측컨대 작년 촛불 집회의 학습 효과로경찰국가 한국의 경찰들은 시가지에서 사회운동을 저지하는 반복 훈련을 받았던 거 같다. 만약에 이날 집회 참여 인원이 작년 6월10일처럼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촛불로 가득 찼더라면 경찰들의 진압 작전이 수월하게 진행되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인원에 대한 아쉬움이 남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논쟁적인 반문을 던질 수 있다. "더 많은 인원이 모였다고 하자. 그래서? 그래서 뭐가 해결되는데?"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선천성 난청증 걸린 현 정권과 소통하길 원하는 시민들은 벽에 부닥치고 있다. 그렇다고 거리의 정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광장과 거리에서 시민들은 쌍용자동차, 운하, 용산 참사 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다양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이 소통의 공간은 정당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 설 수 있는 급진적 민주주의가 자랄 수 있는 훌륭한 토양으로 일궈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광장에서의 소통의 열기를 어떻게 "광장", "거리"라는 제한된 지리적 규모를 넘어서 어떻게 현 정권의 '소통불가능성의 지속 가능성'을 제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가다. 앞으로도 현 정권의 임기가 끝날 때 까지 막차를 놓치는 불편함과 다음날의 피곤함이 반복되겠지만 광장과 거리의 정치는 지속될 것이고 지속되어야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 앞서 반문했던 "그래서?"로돌아가 보자. '집회 그래서 집회 그래서 집회 그래서…'의 순환 고리가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전략인가? 광장의한복판에서 목청을 높이다가, 순식간에 덕수궁 앞 인도 앞에서 로보캅 복장을 한 전경들을 멍하게 마주하게 되면서 무기력함을 느낀것은 비단 필자뿐일까? 일찍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모든 견고한 것들은 대기 중으로 사라진다"는시적인 문구를 남긴 바 있다. 이 문장은 혁명을 통하여 지배 계급(견고한 것)을 무너뜨리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그러나 한 세기가 지나서 복잡해진 정치·사회 구조 속에 놓여 있는 우리들에게 이 문장은 지배 계급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향해 던져진 물음표이기도 하다. "광장의 열기를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 견고하게 할 것인가?"
'듣보잡' 현상의 교훈? '듣보잡'이라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용어가 짐짓 인터넷과 멀어 보이는 교수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일상용어가 되었다. 인터넷국어사전에 따르면 '듣보잡'은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을 일컫는다. 이 용어의 확산 원인은 진중권과 변희재 간의 논쟁에서진중권이 변희재를 '듣보잡'이라고 딱지를 붙이면서 확산되었다. 그간 공개적으로 변희재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게 껄끄러워 구경만하고 있었지만, 이번 '듣보잡' 현상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현재 수많은 보수단체의 완장을 차고 있는변희재는 사실 '듣보잡'이라고 하기에는 인터넷 토론 바닥에서는 유명한 논객이었다. 1990년대 후반 논객사관학교로 알려져 있던<대자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인물과사상사에서 대중문화 관련 서적을 출간했었다. 2002년 대선 기간 동안에는당시 노무현 후보의 진지였던 인터넷 토론 사이트 <서프라이즈>의 필진으로 활동하면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촉망받는논객으로 주목받았었다. 이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의견이 갈리면서 <서프라이즈>를 나와서<시대소리>를 창간했었다. 필자 또한 2003년부터 <대자보>와 <시대소리>에서 활동을시작했고, <대자보> 사무실에서 변희재를 가끔 만났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이후 변희재는 안티조선 논객에서조선일보 논객으로의 변신을 하였다. 변희재의 전향에서 대해서 그간 언급할 기회가 없었지만, 예전부터 그의 글을읽으면서 생각한 바로는 논객으로서 변희재는 이념적 토대에 근거하기 보다는 각각의 상황에 적합한 맥락들을 빠른 시간 안에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이슈화하는데 재능이 있는 감각적인 글쓰기에 능한 인물이다. 변희재의 이슈화를 위한 감각적글쓰기가 이념적 토대에서 벗어나서 '변희재' 그 자체를 이슈화하고자 나서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는 포털 공격, 조선일보칼럼니스트,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 등등으로 종횡무진 '감각적 활동'에 나서며 변신에 성공했다. 갑자기 광장의 정치를이야기 할 참에 왜 변희재를 끄집어냈냐며 반감이 생길 독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잠시 제쳐두고, 이 글에서는이 두 고리가 서로 연결된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글쓰기를 시작해서 이슈 제기에 능했던 진보진영의한 젊은 논객이 하루아침에 보수 그것도 극우매체의 논객이 된 사건을 개인 하나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 볼필요가 있는 것이다. 변희재 본인에게 직접 물어 보아야 할 질문이겠지만 변희재의 '감각적 활동'을 통해 얻은 수많은완장들은 역으로 그 많은 완장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도 된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깨놓고 말해서진중권과 같은 예외적인 스타 논객을 제외하고는 이 바닥에 있는 글쟁이들은 생계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평소 진보진영이 대안이 없다고 쉽게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과 함께 진보진영에서 정책을 구상하고, 대안을 만들고자 하는사람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했는가에 대해서 필자는 시민사회 차원에서 그러한 고민이 매우부족했었다고 생각한다. 변희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감각적 활동'을 추구했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지만 내 생각에그가 했던 매체 중에 어느 하나라도 수익 창출을 이끌어 냈다면 그 정도의 초월적 행보는 보이지 않았을 거라고 예측한다. 변희재와같은 사회의제에 포괄적이면서 의제 포착 능력이 뛰어난 논객들이 활동할 수 있는 안정적인 매체가 있고, 사회의 중요한 이슈별로전문분야를 전공한 소장학자들에 대한 안정적인 연구 공간이 마련된다면 진보 진영의 정책 역량은 상당히 강화될 것이다. 언제까지진보매체들도 예외적 천재인 진중권의 '입' 하나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창피하기도 하지만 이는 필자에게도현실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2003년 <대자보>에서 시작해서 지금껏 여러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이러한활동이 딱히 최소한의 생계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무관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현재 필자의 나이 스물여덟. 88만원세대, 실업자 범주에 잡히지도 않는 일개 대학원생이다. 미국에서 대학원생은 극빈층에 속한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고작 할 줄 아는 것은 글을 읽고, 쓰는 것 밖에 없다. 시민단체에 한 푼이나마 회원으로 가입하여 돈을 매달 낼 능력도 못돼서,글이나 쓰면서 대운하를 비판하고, 서울시정을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글을 쓸 때 소속으로 밝히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객원연구원이란 직함은 어디까지나 '객원'이고, 연구소로부터 그 어떤 물적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기본적인 연구원이지향하는 바에 동감하고, 미약하나마 직함으로 연구소를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회비 대신에 글로써 회비를 내는꼴이다. 그간 필자가 <프레시안>과 다른 매체에서 실명을 언급하면서 운하와 함께 현 정권을 비판한 글들과논문이 앞으로 학계에서 학자로서의 미래에 얼마나 장애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이든 이명박 정권이든 그 시대를 안고 가는사람으로서 소박한 책임감으로 마땅히 펜을 들 뿐이다. 한 줌도 안 되는 20대 논객인 아흐리만 한윤형과 김현진이 그러하며,정권을 가리지 않고 날카로운 필봉을 겨누고 있는 <프레시안> 기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속시원하면 그걸로 "땡!"인가? 위기의 희망제작소는 진보진영의 위기를 가리킨다 소장학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내 후배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적은 월급이라도 주면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 이 말은 결코 낭만적인 빈말이 아니다. 그간 대운하 비판을 하면서 알려진 필자한테도 6월 10일 아침에 한 선배가 국토연구원에서 경인운하 프로젝트에서 GIS(지리 정보 시스템) 관련 1년짜리 위촉연구원을 뽑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문자를 보내 왔었다. 운하 비판을 해왔던 나까지도 그 운하 프로젝트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누구든 '듣보잡'이 될 수 있는 덫 아래 놓여있다. 절묘하게도 어제 시청 앞 거리에서 녹색연합이 만든 경인운하 반대 현수막을 보면서 요즘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유행어가 떠올랐다. "이거 왠지 씁쓸하구먼…" 6월 3일 <경향신문>에는 위기의 '희망제작소'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다. "지역 활성화와 소기업 발전 운동에 앞장선 시민참여 연구소 '희망제작소'가 위기에 처했다. 창립 3년째를 맞은 올해 들어 정부와기업의 협력 사업이 잇따라 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2000여 명의 개인 후원으로 단체를 꾸려가고 있지만 필요한 재원을확보하기 어려운 형편이 됐다. 이 때문에 희망제작소는 지난 4월말 사무실을 종로구 수송동에서 평창동으로 이전했다. 월세 부담금을절반쯤 줄인 것이다. 또 지난해 말쯤부터 전체 인력의 절반에 달하는 40여 명의 연구원이 희망 퇴직이나 휴직을 하는 방식으로연구소를 떠났다." 대표적인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의 사정이 녹록치 않은 지경이 되었다. 박원순 변호사라는 시민운동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개인 후원이 2000여 명에 불과하다니 나머지 민간연구소 사정은 말할 것도 없겠다. 희망제작소는 설립 초기에 삼성으로부터의 후원을 받느냐 마느냐로 논쟁을 치른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비판과 더불어 이 연구소가 재벌의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운영이 가능하도록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 의외로해답은 간단하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10명의 회원이 1명의 연구원을 책임진다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이러한 운영방식을 상기한다면 결국 국가, 재벌 등의 지배 세력들로부터 독립적인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돈으로연구소의 물적 토대를 만드는 모순에서 벗어나서 자립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필자가 너무 구질구질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꺼냈는가?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서 진보진영은 대안이 없다는 비판은 비판이기보다는 비난에 가깝다. 처음에 던졌던화두를 다시 꺼내보자. "광장의 열기를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 견고하게 할 것인가?" 광장의 정치를우리만의 축제로 끝날 게 아니라 난청증에 걸려 있는 현 정권의 견고함을 대기 중으로 증발시키고자 한다면, 광장의 열기를 사라지지않고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견고하게 하는 실천도 병행되어야만 한다. 현재로서는 변희재와 같은 사례를 '듣보잡'이라고 희화하하며예외적인 사례로 단정할 수 있겠지만 지금도 주변에서는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자신의 포부와 무관하게생계를 이유로 변경하려는 침묵하는 '듣보잡'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니 운하를 강하게 비판한 필자조차 운하 관련 프로젝트에위촉으로 들어갈 당의정의 유혹을 받고 있지 않은가! 6월 10일의 집회에서 경찰들로 인하여 광장의 의사소통 공간이일순간에 사라지면서 느꼈을 허무함과 무기력함을 어깨에 지고서 집으로 돌아간 시민이라면 시민단체나 민간연구소에 회원 가입을 하여회비를 지원하든 인터넷신문에 자발적 구독료를 냄으로써 그러한 허무함을 이겨냄으로써 먼 길이겠지만 하나의 대안을 찾는 방법이라고생각한다. 촉망받던 한 젊은 논객의 전향은 진보진영에게 희극에 가까운 비극이다. 하지만 광장을 넘어서 일상적실천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희극조차 허락되지 않는 철저한 비극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듣보잡'현상이 한국 사회에 던져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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